"보잘것 없는 해방," 그리고 정체성의 형성
나는 내가 작년 9월 모 대학의 수시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 어른이 된 줄로만 알았다. 그도 그런게, 학교를 더 이상 나갈 필요가 없었고(반 아이들에게 무척 방해가 되기 때문에.), 다른 애들이 다 학교를 가있는 평일날의 시간에 PC방에 가서 따지고보면, 우리 모두는 이러한 기념비적인 사건을 하나씩은 기억하는 듯 하다. 나는 더 이상 "중·고등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각인시켜주고, "이제는 성인이다."라는 기막히게 당돌한 생각의 방아쇠를 당긴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보는 전환기의 시작이다. (전환기가 무엇인지는 첫번째 포스트의 두번째 단락을 참고하시길!) 그리고 이러한 전환기를 보여주는 영화를 통해 앞으로의 이야기를 전개해볼까 한다.
그림: 안녕 어린시절. 이제 너를 보내주려 해.
오늘 포스트의 핵심 주제인 정체감
위 기 | |||
예 | 아니요 | ||
관 여 | 예 | 정체감 성취 | 정체감 유실 |
아니요 | 정체감 유예 | 정체감 혼미 | |
위의 표에 따르면 정체감에는 네 가지 모습이 있다. 관여라는 것은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 본인이 본인의 입장을 스스로 충분히 정리했을 때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위기라는 것은 어떠한 문제를 충분히 겪었느냐를 의미한다. 이 네 가지 모습들 중에서 주목하고 싶은 두 가지 모습이 있는데, 이는 정체감 유실과, 정체감 유예이다. (추가정보) 이중에 청소년 위기가 발생하는 위기가 생기는 때는 바로 정체감이 유실 되어 있을 때이다. 충분히 자신을 이해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결단들은 결국 이후에 제기 되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이는 청소년의 정체 위기가 부각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어릴적, 내 인생의 스웨덴 버전, <개 같은 내 인생>
1950년대 후반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 아름답고 정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12살 소년 잉게마르가 등장한다. 그리고 온갖 말썽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하여 (그리고 자신의 순진함에 충실한 행동들로 인해 일어나는 끊임없는 문제들에 의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삼촌의 집에서 살게 된다. 잉게마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 곳에서 잉게마르는 자신의 호기심과 사랑이 이끄는 모험들과 자신이 사랑하는 애완견과의 이별,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통하여 성장하는 모습을 이 영화가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한번 보신 분이라면 질문할 법한 것이 여럿 있다. 과연 무엇이 성장한 것인가? 그리고 과연 우리 모두는 그 어린 삶을 살아오면서 어떠한 과정들을 거쳐온 것인가? 이 영화는 이러한 질문의 여러가지 측면을 담고 있다.
영화 속의 잉게마르는 어머니를 잃기 전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혹은 자신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적이 없다. 하지만 타의적으로 이루어진 어머니와의 이별. 자신이 무척 사랑하던 애완견과의 이별. 그러한 위기 가운데서 잉게마르는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 즉 과거의 시간을 조망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더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한다. “And what about Laika the space dog? the put her in a Sputnik and sent her to space. (중략) I don't think she felt good. (중략) She starved to death. It's important to have something like that to compare things to.”라고 이야기하며 최초로 우주에 보내진 강아지인 라이카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을 비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이후로도 내레이션에는 죽음에 대한 잉게마르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 대사들 속에는 정체감이 형성 되어있다.
이러한 정체감을 형성하기까지 잉게마르는 여러가지 모험을 한다. 그 중 한가지 예는 잉게마르와 베릿과의 관계이다. 이성관계의 발전 과정에서 흔히 영웅 숭배기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는, 사춘기 시작과 함께 나타는 현상 중 하나인데, 젊고 인기 많은 선생님이나 실력 있는 주위의 사람, 혹은 아이돌들이 청년기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잉게마르가 좋아하던 (하지만 비현실적인 상대인) 베릿과의 관계에서 잉게마르의 태도를 보면 그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지 알 수 있다. 누드모델로 섭외된 베릿을 따라간 잉게마르는 정작 자신이 궁금해하는 베릿의 나체를 볼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베릿이 누드모델로 작업하러 가는 두 번째 날에는 지붕위의 창문까지 박살내면서 기어코 자신이 그렇게 궁금해하던 베릿의 나체를 전부 보았다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꽤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려 하는 잉게마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In fact, I've been kind of lucky. I mean, compared to others. You have to compare. So you can get a little distance from things. Like Laika. She really must have seen things in perspective. It is important to keep distance" / "사실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다. 내말은,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우린 비교해야한다. 다른 사물들과 좀 거리를 둘 수 있게끔 말이다. 라이카처럼 말이다. 그녀는 정말 그녀의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어머니가 아파서 구급차에 실려가는 장면 바로 전에, 위의 대사가 나온다. 그리고 저 대사에서 잉게마르의 정체감들이 더욱 굳어져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시각으로 무언가를 보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객관성을 두고, 거리를 두고서 무언가를 조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어린 아이가 깨닫기엔 너무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린아이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가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에서 우리의 이전 모습을 뒤돌아보는 일이, 그리고 그런 과정 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일관성을 지니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요약을 하자면, 잉게마르는 자신의 정체감 유실 상태에서 외부적인 위기가 닥치지만, 그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파헤치려들어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고 성취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00번의 구타>에서 볼 수 있는 정체감 유예.<400번의 구타>(줄거리)의 주인공인 앙뜨완 드와넬은 한마디로 반항아다. 여러 면에서 정체감 유예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대안들에 대해서 탐색하려 노력하지만, 불확실성이 너무 많고 안정감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며 여러가지 탐색을 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정체감 성취에 도달하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무척 간단한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어른들의 몰이해 가운데 소년원으로 끌려가게 되는 앙뜨완. 앙뜨완은 영화 초반에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다가, 결국 친구와 함께 땡땡이를 치게 된다. 그리고 함께 파리의 거리를 활보하던 둘은 앙뜨완의 엄마가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보게 된다. 그런데 앙뜨완의 반응이 주목할만 하다. "앗. 내가 학교를 안 갔다는 사실을 들켰는데 어떡하지?" 그리곤 엄마의 일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어짜피 앙뜨완은 엄마가 그 현장을 들킨 이상 자신이 혼날 일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
이렇게 형성된 우리의 정체성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커다란 영향을 준다. 왜냐면 한 사람의 발달 및 성장이라는 것은 연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정체성의 발달을 위해서는, 사실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조금은 잔인한 시각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하며, 정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과감한 경험을 시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마치 베릿을 보기 위한 잉게마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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